본문 바로가기

[新]자유광장

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ㆍ소설, 소년이 온다.


자유소리
[518]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ㆍ
소설, 소년이 온다.​

소설, 소년이 온다 -

시신을 돌보던 중학생이 광주에서 총살당한 이유

​소설 『소년이 온다』

​출처-<창비>

​노벨 문학위원회 위원은 한강의 작품 중 ‘소년이 온다’를 가장 추천했다.

​“(소년이 온다는) 1980년 한국 군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하던 학생과 민간인 100여 명을 학살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,
매우 감동적이고 때로는 끔찍한 이야기”



“이 책은 그 자체로 잔인한 권력의 소음에 대항할 수 있는 매우 부드럽고 정확한 산문이다.”

​“한강은 산 자와 죽은 자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,

그리고 이러한 트라우마가 어떻게 여러 세대,

때로는 집단에 남아있는지 보여준다.”


광주, 1980년 5월 18일


「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.
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.
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,
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,
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,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.

​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.
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.
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.
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.
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.」


탐관오리(貪官汚吏)!

부패한 정치 검사는 사욕을 위해 공권을 쓰고,
권력에 눈이 먼 무능한 장군은 외적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도 자국 국민을 죽이는 쿠데타에는 누구보다 용감하다.

​ ‘박정희의 아들’로 불리던 전두환과 그의 일당들은 박정희의 죽음 이후 신속하게 자신들의 권력욕을 실현해 나갔다.

​그들은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자국민들에게 잔인한 살인을 자행했다.

​5.18 항쟁 기간 동안,   계엄군은 광주 시민들에게 총 51만 2,626발의 실탄을 발사했다.

​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만 606명의 시민들이 학살당했으며 그중 30%는 10대 소년들이었다.

​19살의 ‘손옥례’ 양은 시신 담을 관을 구하러 가던 도중 머리와 가슴 등에 M16 총탄 7발을 맞고 사망했다.

그것도 모자랐는지 계엄군은 죽은 손 양의 가슴 부위를 다시 대검으로 찔렀다.

​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도 끔찍한 것이었다.

​5.18 피해자의 자살률은 10.4%로 이는 일반인의 500배가 넘었다.


열여섯 살 동호가 시신들을 돌보는 이유

​그것은 조준 사격이었다.
열여섯 살,
만으로는 열다섯 살인 중학교 3학년 동호는 분명히 보았다.

​그날 동호는 정대와 함께 손을 맞잡고 선두로,
선두의 열기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.

​일요일부터 돌아오지 않는 정대의 누나,
정미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.

​광장은 광주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.

​‘시상에, 옥상이여’ 어떤 아저씨의 숨찬 중얼거림이 들리는 듯하더니 총성이 들렸다.
한 발이 아니었다.

귀를 찢는듯한 총소리에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.

​순간 정대는 뒤로 넘어졌고 동호는 정대의 손을 놓쳤다.

​용감한 몇몇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들쳐업었다.

​옥상에서 그리고 광장 중앙의 군인들 쪽에서 연이어 총성 소리가 들렸다. 사람들은 다시 고꾸라졌다.

​동호는 몸이 얼어붙어 골목 담벼락에 들러붙었다.

​갑자기 어느 순간 광장이 정적에 쌓였다.

​군인들이 2인 1조로 걸어 나와 쓰러진 사람들을 신속하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.

​동호는 그렇게 정대와 영원히 헤어졌다.


「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,

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  그은 자상이 있다.

​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.

​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.」

​동호는 합동 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가 무서움과 구토를 참아가며 흰 무명천을 들추고 시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.

​정대의 시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.

​상무관으로 시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.

​관이 모자랄 정도였다.

소식이 끊긴 가족을 찾아온 사람들이 시체를 덮은 흰 무명천을 들출 때마다 웅성거림과 통곡과 비명들이 들렸다.

​시취, 즉 시체가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. 마스크 정도로는 감당이 안 됐다.

​초를 태우면 시취가 줄어든다는 말에 시체들 머리맡마다 초를 켰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.

​「너, 시간 있으면 오늘만 우리 도와줄래?

손이 너무 모자라.

어려운 건 아니고......

저기 끊어다놓은 천 잘라서 저쪽에 있는 사람들 덮어주면 돼.

너처럼 누가 가족을 찾으러 오면 하나씩 걷어서 보여 주고.」

​그날부터 동호는 자신을 처음
맞이해 준 ‘선주 누나’와 한 조가 되었다.

​동호는 열심히 형들, 누나들을 도왔다.

​시체가 들어오면 성별, 어림잡은 나이, 입은 옷과 신발의 종류 등을 꼼꼼히 장부에 기입했다.

​시신을 찾은 유족들은 목화솜으로 시신의 코와 귀를 막아주고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혔다.

그리고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끈으로 묶은 후 애국가를 부르며 짧은 추도식을 치렀다.

​동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.

나라가 죽인 사람들인데 왜 애국가를 부르는지.

​그런 동호에게 ‘은숙 누나’는 군인들은 반란자이지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며 동호를 이해시키려 했다.

​「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,  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.

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해낼 수 있을 것처럼.」


정대와 정미 누나에 대한 기억

​동호네 사랑채에 정대와 정미 누나가 세를 들어왔다.

​둘의 아버지는 대전으로 돈 벌러 갔다고 했다.

​동호는 초등학생만큼 키가 작았다. 자기도 키가 작은 정미 누나는, 동호 공부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방직 공장을 다니는 정미 누나는, 그 빠듯한 형편에도 동호 키 크라고 우유를 배달시켜 먹였다.

​정대는 누나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문계고 입시 준비를 하지만  누나 몰래 신문 수금 일을 하는 착한 친구였다.

​야근을 끝내고 돌아온 정미 누나는 가끔 동호를 몰래 깨워 연탄불을 빌려 갔다.

​정대 역시 누나에게는 도서관에 다녀온다고 말하지만,

수금 일 때문에 귀가가 늦어져 둘은 자주 연탄불을 꺼뜨렸다.

​하루는 퇴근한 정미 누나가 동호에게 혹시 버리지 않았다면 1학년 교과서를 좀 달라고 했다.

​야학에 다니게 됐다고 주섬주섬 말하며.

​「정대한텐 말하지 마라. 안 그래도 저 때문에 내가 학교 못 다녔다고 눈치 보는데.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할 때까지만 모른는 척해줘.

​얼굴에서 무슨 풀꽃 같은 게 연달아 피어나는 것처럼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을 너는 멍하게 바라보았다.」

​책을 건네준 동호는 신이 났다. ‘세상에...... 너는 머시매가 어쩌면 이렇게 착실하냐.’

​누나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.

책을 받아 든 누나의 생글거리던 눈, 고단한 미소 같은 것들이 동호를 뿌듯하게 했다.

​두 평도 안 되는 단칸방에서 어찌 정대 몰래 공부를 하겠다는 건지 그것이 걱정되기는 했지만.

​「야학, 공장, 가끔 가던 교회, 일곡동 오촌 당숙네.

다음 날 아침부터 정대와 함께 그곳들을 찾아다녔지만 정미 누나는 어디에도 없었다.」

​일요일 밤부터 정미 누나가 사라졌다.

​길 가던 누군가가 총에 맞아 죽었고 또 어떤 처녀는 군인들이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광주를 떠돌 때였다.

​동호는 울먹이는 정대를 달래 함께 정미 누나를 찾아 나섰지만, 누나를 찾을 순 없었다.
그리고 그날, 정대마저 사라졌다.


그들에게 던지는 정대의 질문

​그들은 곡물자루를 운반하듯 시체들을 트럭에 던져 넣었다.

​정대의 몸 위에 다른 시체들이 겹겹이 쌓였다.

​피를 너무 쏟아내 정대의 심장은 멈췄다.

​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는 쏟아져 나왔기에 정대의 얼굴은 습자지같이 얇고 투명해졌다.

​「계속해서 내 몸은 썩어갔어. 벌어진 상처 속에 점점 더 많은 날파리들이 엉겼어.
눈꺼풀과 입술에 내려앉은 쉬파리들이 검고 가느다란 발을 비비며 천천히 움직였어.」

​정대의 몸뚱아리는 썩어가고 있었고 심한 악취를 풍겼지만, 정대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.

누나가 보고 싶었다.

누나가 쪄 준 햇감자가 그리웠고, 자신의 이마와 뺨을 쓰다듬어 주던 누나의 손길이 생각났다.

​어느 초파일 날,

누나와 함께 엄마를 모신 절에 다녀올 때 버스 창가에서 누나와 함께 맡았던 아카시아 냄새가 떠올랐다.

​「누나는 죽었어. 나보다 먼저 죽었어.

혀도 목소리도 없이 신음하려고 하자,
눈물 대신 피와 진물이 새어 나오는 통증이 느껴졌어.

​눈이 없는데 어디서 피가 흐르는 걸까.

어디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까.」

​눈을 감을 수 없었던 정대의 넋이 정대의 몸을 빠져나왔다.

​정대의 넋은 자신의 얼굴과 몸을 보며 누나를 떠올렸다.

​어디선가 누나의 혼도 어른거리고 있을 테니 누나를 만나고 싶었다.

​하지만 그곳을 모르고 안다고 해도 몸이 없으니 어찌 가야 할지 몰랐다. 누나도 몸이 없을 테니 어떻게 누나를 알아봐야 할지도 몰랐다.

​군인들은 모아온 시체들을 덤불숲 구덩이에 쌓았다.

​그들은 냄새를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코와 입을 막으며 커다란 석유통을 들고 와 시체들 위에 뿌렸다.

​정대의 넋은 군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.

군인들이 불을 붙였다.

​어두운 덤불 숲이 환해졌다. 시체들의 몸과 근육과 내장이 불타며 검은 연기가 허공으로 솟았다.

​정대의 넋도 연기를 따라 올랐다. 정대는 이제 모두 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.

​누나를 보지도 못했지만......

정대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.

​「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,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,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,

그 이마,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더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.

​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,

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. 왜 나를 쐈지, 왜 나를 죽였지.」


동호의 최후와 그 이유

​「동호야.

지금 같이 나가야 돼.

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너는 떨었다.

​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,

살고 싶어서,  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.」

​동호는 은숙 누나의 말을 거절했다. 동호는 가지 않았다.

​군인들이 곧 진입할 것이고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죽일 것이라는 말들이 파다하게 퍼졌다.

​동호는 그날 자신을 데리러 온 엄마에게 거짓말까지 하며 도청에 남았다.

​여섯 시에 간다고,

가족들 같이 저녁 먹자고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.

​카빈총을 든 채로 집에 가라고 화를 내는 ‘진수 형’의 말에도, 비록 머뭇거렸지만,  동호는 분명히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.

​「양심.그래요, 양심.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.

​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,

​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.」

​새벽 두 시경에 군인들이 진입할 것이란 말이 돌았다.

​남은 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다.

​그들은 용기가 있어서 남은 것이 아니었다.

​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에 붙잡혀서,

무서워 도망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, 친구의 손을 놓치고 도망친 동호처럼 그들은 갈 수 없었다.

​남은 사람들의 희망은 하나였다.

이 밤을 버티면, 이 밤만 버티면 수십만의 시민들이 도청 앞 분수대 앞으로 모일 것이라고.
그러면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.

​카빈총을 들고 한쪽 창문을 맡은 진수는 동호와 동호 또래의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말하고 또 말했다.

​캐비넷에 숨어 있다가 총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면 항복하라고. 꼭 손들고 나가라고.

​군인들도 손들고 나가는 어린애들은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.

​「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,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.

​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.

​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.」

​진수와 많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체포되어 뒤로 손이 묶인 채 도청 마당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.

​장교 하나가 다가왔다.  그는 흥분해 있었다.

그 장교는 한 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머리를 흙바닥에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어 댔다.

​자신이 월남에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 명도 넘는다며 씩씩댔다.

​장교의 군홧발에 진수를 바닥에 이마를 찧어 피를 흘렸다.

​그때 진수는 보았다.

동호와 몇몇 아이들이 두 손을 들고 내려오는 것을.

아이들은 진수가 시키는 대로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다.

​장교는 진수의 등에 발을 올린 채로 ‘씨팔 빨갱이들, 항복이다 이거냐?  목숨은 아깝다 이거냐?’

란 말을 뱉으며 M16을 들어 아이들을 조준했다.

​그리고 망설임 없이 아이들에게 총을 갈겼다. 아이들이 쓰러졌다.

​동호는 그렇게 죽었다.

‘씨팔, 존나 영화 같지 않냐.’

이것이 아이들이 쓰러지자 장교가 뱉어낸 말이었다.  


살아남은 사람들

​「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  치르지 못해,
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.」

​그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.

​모진 고문이 있었고 짐승처럼 살아야 했던 감옥이 있었다.

​군부는 상무대 공터에 작은 건물 하나를 세웠다.

군법재판소였다.

​살아남은 사람들의 몸 구석구석에 있는 고문의 흔적들이 어느 정도 아물자 모두 재판에 회부됐다.

​총을 든 군인들이 재판장을 휘젓고 다녔다. 재판은 요식행위일 뿐이었고, 판사는 사형부터 7년 형까지 다양하게 형을 선고했으나 이듬해 성탄절 대부분이 특사로 석방되었다.


군부 스스로 자신들의 부조리를 자백하듯이.

​「꼭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어, 형. 아직 완전히 취하지 않은 그의 검고 깊은 눈이 나를 응시했습니다.

​언제가 됐든 내가 죽을 땐,

그 사람들까지 꼭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.」

​이것이 김진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떠올린 그의 모습이었다.

​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지 못했다.

​대학, 직장 그 어디든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.

​숨죽이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야 했다.

​누군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.

​십 년의 세월을 김진수는 취해서 살았다.

​그리고 겨울 어느 날 김진수는 자살했다.

​그의 장례식은 조촐했고,

그처럼 죽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 살아 나갔다.


「나는 싸우고 있습니다.

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. 살아남았다는,

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.

​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.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.」


동호가 죽은 후, 그의 어머니

​삼십 년의 세월을 동호의 어머니는 오직 후회로 살았다.

​여섯 시에 온다고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 동호의 말을 믿은 것을,

​심지어 불쌍한 정대와 정미 남매에게 세를 준 것까지 후회하고 살았다.

​그 세월 동안 동호의 아버지가 죽었고 정대의 아버지도 죽었다.

​그리고 그 세월 내내 동호의 마지막을 잊을 수 없었다.

​하늘색 체육복에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있던 동호의 마지막 모습과 총을 맞고 하도 피를 흘려 그토록 가벼웠던 동호가 들어 있는 관의 무게를.

​「목숨이 쇠심줄 같어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. 정대네 아부지까지 떠나 괴괴한 문간채는 밖에서 자물쇠로 채워버리고,  꾸역꾸역 가게에 나가 장사를 했제.」


어느 날 동호 어머니는 동호를 보았다.

​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짧은 머리의 중학생이었다.

​뒤통수가 영락없이 동호였다.

하얀 하복 반소매 아래 호리호리한 팔뚝도 바로 동호였다.

​좁은 어깨에 길쭉한 허리까지. 고라니같이 앞으로 수그러진 목조차.

​「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,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줄라고 온 것인디,  늙은 내가 너를 놓쳐버렸어야.」


소년이 온다.

중학교 3학년 동호가 온다.

​목이 길고 하늘색 체육복을 입은 소년이 온다.

​그 소년은 눈 덮인 무덤 사이로 온다. 그리고 우리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.

​우리는 그 소년을 따라간다.

동호와 함께 가지런히 쓰러진 다른 소년들도 온다.

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.


「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.

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, 빛이 비치는 쪽으로,

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.」

​그들에게 천벌을 내리지 못한다면, 다음 차례는 내 인생일 수 있다

​「그때 난 네 손을 붙잡았는데.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,

넋 나간 듯 중얼거리는 너를 행렬의 앞으로, 더 앞으로 잡아끌었는데.

​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,

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너를 힘껏 끌고 나아가며 난 노래했는데. 목이 터져라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는데.」

​‘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.’

이 단순한 문장 하나에 광주 민주화 운동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습니다.

​소요 사태도 아니었고 폭동도 아니었습니다.

민주주의를 또다시 후퇴시키고 부당하게 권력을 찬탈하려는 정치 군인들에 대한 당연한 저항이었습니다.

​민주 시민들의 의무였습니다.

외적의 침입에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라는 군대를 사리사욕을 동원하여 자국민들을 학살하게 한 사건,  

이것이 5.18의 단순하고도 분명한 진실입니다.

​오래된 사건도 아닙니다.

겨우 40년 전 일어난 사건입니다.

​이 천인공노할 국가 반란 범죄의 주역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.

​당시 ‘일부’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싶지만,

다수였던 한국인(?)들에 의해 또 다른 학살 주범인 노태우가 전두환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.

​참으로 쥐구멍으로라도 기어들어 가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지만, 처음이 아닙니다.

​단 한 번도 반민족 범죄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해 본 적이 없는 부끄러운 역사, 악이 승리하는 우리의 역사가 또다시 반복된 것일 뿐입니다.

​후에 학살 주범인 전두환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으나 그의 수감 기간은 2년에 불과했습니다.

​그는 숱한 명언(?)들을 남기며 골프를 즐기고 90세까지 건강하게 천수를 누렸습니다.


역대 대통령 중 두 번째로 오래 살았지요.

​그의 집권을 도와 온갖 특혜와 부를 누렸던 부역자들 역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.

​그러니 이런 일이 아직도 벌어지겠지요.

​형법 제87조 (내란) :

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.

​1. 우두머리는 사형,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.

​2.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,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.
살상, 파괴 또는 약탈 행위를 실행한 자도 같다.

​3. 부화수행(附和隨行)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법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준엄합니다.

​또다시 그들은 처벌받지 않았습니다. 이와 같은 악순환의 반복이 내 인생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.

​경험은 바보도 깨우치게 합니다. 보고 듣는 것이 악의 승리와 양심의 패배라면,  그 경험들이 계속 쌓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퇴행할 것입니다.

​오직 이기심만이 미덕이 될 것이며 무임승차를 한 사람보다 하지  못하는 사람이 더 비난받을 것입니다.


우리 사회가 그렇게 된다면,

내 인생을 지키기 위해

우리는 진흙 구덩이 속 개싸움을 벌이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.

​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가 피어날 수 없듯이 더러운 사회 속에서 내 인생만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.

​약 15년으로 끝나버린 동호의 인생 다음 차례는 내 인생이 될 것입니다.

​2023년 지금,  우리 눈 앞에 펼쳐진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 증거입니다.

​사후 약방문이 될지라도, 부관참시를 해서라도 민족 반역자들과 학살의 주역들,

그리고 그들에게 부역한 언론인들, 지식인들, 정치인들, 법조인들을 처벌해야 합니다.

​단 한 번이라도 죄지은 자들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실행되어야 합니다.

​한의 민족이 아닌 한을 푸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.

​5.18 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재처벌이 있어야 합니다.

주범뿐 아니라 부역자들까지.

​그것이 온전히 내 인생, 내 가족의 인생, 내 친구들의 인생이 보호받는 길입니다.


친구의 손을 놓친 동호,

그래서 어린 나이에 끝까지 도청에 남은 동호,

15년짜리 인생을 산 동호와 그 친구들이 옵니다.

​함께 가자고 손짓하며 옵니다.

그 손짓에 우리가 대답해야 합니다.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그들이 사과하도록 해야 합니다.

​우리 사회에서도 정의와 양심이 이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.

​동호네 가족의 인생,
정대네 가족의 인생,
그리고 여러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인생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.


힘들게 고통스럽게 광주 중학생 동호의 짧은 인생을 소개해 드렸습니다.

​동호가 온다면 반갑고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.

​한국 언론들이 전두환에 부역할 때,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에 잠입하여  그 실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,

​ ‘푸른 눈의 목격자,

위르겐 힌츠페터(Jürgen Hinzpeter)’가

남긴 말을 소개하며   마칩니다.

​“우리 독일인이 제2차 세계 대전 때 했던 만행을 기억하는 만큼,
5.18도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.”


인빅투스 편집 : 임권산

​※ 다시한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♡